태백산맥을 읽고
아래 자료 화면
Pantalla Base/Guggul/Argentina 캡처.
수필가 윤봉춘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이민
1세대에게는 영어보다는 모국어
표현이 여러모로 편리한 것이 사실이다.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대도시
거의 한국도서를 판매하는 서점이 있어
신간이고 구간이고 손쉽게 구하여 볼 수 있다.
미국 어느 지역에서나 한국어
신문을 받아 볼수 있고 라듸오
TV는 기본이니 그런 면에서는
본국 생활처럼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지낸다.
30여 년 전에 발간된 한국소설을
책장에서 뽑아 보니 활자호수가
작아 돋보기 없이는 볼 수없을
정도로 글자가 작고 요즘 나오는
지질보다 윤기가 없고 종이도
누렇게 변색된 촌 스런 책이 손에 잡혔다.
그중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30년 만에 재독 하였다.
조 작가는 언제인가 한국의 전근
현대사를 강의하는 조선일보 출신의
김 용삼 전 기자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던 일이 있었다.
김 전 기자는 조 작가가 작품
취재차 만났다는 인물들을 찾아내
그들의 증언과 정 반대의 시실을
작품에 기술하였다고 질타하였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이니 믿으라고
주장하고 전 기자는 사실이 아닌
사건을 작품에서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데서 논란은 시작되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소설은 작가의
상상 속에 펼처진 문자 그대로의
<소설>이라고 해명하면 될 일이고,
전 김 기자가 요구한 것처럼 왕조실록
같은 사실만을 기록하는 사초(史草)처럼
써야 한다고 우길 필요가 없는 논쟁 같았다.
폐 일언 하고 우선
조정래의 소설은 재미가 있다.
그는 작품 속의 작중인물이 되어
수많은 경우의 사례들을 기술하여
독자들을 이끌어 가는 탁월한 글
솜씨가 있다.
다섯 여섯 살 어린이가 되어
어린애 말을 토하여 내고,북조선의
당을 위하여,수령을 위하여 빨지산
전사로서 이를 뽀득뽀들 갈며
이승만‘괴뢰 정부‘를
쳐부시자가고 목구멍에서 피를 토한다.
특히 그가 즐겨 사용하는
전라남도 사투리는 독자를
전남 어느 시골로 끌고 가 ‘
찰진’남도 사투리에 매몰케 한다.
소설 속에 펼쳐지는 빨치산들의
투쟁 사설(辭說)은 북한을 찬양
고무하는 그 당시 반공법 위반임에
틀림없었다.
그가 쓰는 소설의 작중 인물들의
대화에 독자는 재미에 흠뻑 빠진다.
그래서
조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손닫는 대로 구하여 보는 그의 팬이 되었다.
소설은 허구이다.
작가의 상상력과 자료취재
능력에 따라 단편소설은
요약본이고 대하소설은 장광설(長廣舌)이다.
작가는 작중인물 하나하나의 속에
들어가 주인공의 내부 세계를 활동사진
보는 것같은 장면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20여년 전 북한 관광을 하었을 때
한 차(車)에 두 명의 가이드가 붙는것을 보았다.
필자 순안비행장 안착
한명은 관광 가이드를 하고
또 한명은 감시역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필자의 짧은 식견으로
그 젊은 감시역의 젊은 청년의
차림새가 너무나 세련된 모습에
짓굳은 질문 공세를 한 적이 있었다.
헐벗고 굶주린 북한 주민에
비하여 당신은 정말 멋진 차림새의
부잣집 아들 같다는 등 말도 아닌
질문이 그의 비위를 건드린 거였다.
나눙에 알고 보니 그는 일본
유학까지 마치고 온 북 한의
엘리트 출신이었다.
인천 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막힌
인민군들이 빨치산과 한패가 되어
남한 전국을 교란하는 대한민국의
주적(敵)인 인민군들을 북한 방문길에서는
수없이 마주쳤다.
판문점을 안내하는 인민군 장교와 필자
북조선 땅에서 인민군 전사들을
만나면 절대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고
가이드가 주의를 주었으나 정작 판문점
관광에서는 군관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찍도록 허용하였다
밀사로 남북을 왕래한 이후락 특사는
살아서 돌아왔고,북의 밀사 황태성은
한국에서 처형당했다.
북한에서 열열한 환영을 받으며
김일성과 포옹한 임수경,위장 탈출하다
붙들린 이수근,정수일등 체제에 반항하여
목숨을 걸고 저 분계선을 월경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많은 인물들이 넘나들던
분계선 앞에 선다.
북측 판문각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불과 수십 미터 떨어진 군사 분계선을
어느 대통령처럼 건너보고 싶은
부질없는 생각도 하여 본 적도 있었다.
북한의 호텔이나 시내 일반 식당의
음식은 대체적으로 맛이 담백하고
남한 음식보다 양념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개성 외국인 관광객 대상 어느
식당에서 맛본 놋그릇 칠첩 반상기에
차려진 한식은 너무나 맛이 있어
눈과 혀를 즐겁게 하는 상차림이었다.
놋그릇에 담긴 정갈한 한식.
오래전 일이어서 그 식당 상호가
기억나지 않지만 다시 갈 기회가
있다면 꼭 찾아보고 싶은 맛집이었다.
그 후
또다시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
비자를 신청하였더니 거부당한 적이 있다.
그 젊은 감시역 가이드가 관광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동태를 보고한 것이다.
필자가 성장하며 지낸 곳은
전북 전남 경상도가 맞물린
지리산 밑자락 세 개의 도가
교차하는 운봉(雲峯)이라는 산골이어서
주민들은 삼도 사투리룰 두루두루 섞어
쓰고 이해한다.
이 소설에서는
그 고향 사투리가 질펀하게 나온다.
지금은 듣기 어려운 70여 년 전의
그 사투리가 독자를 아득한 옛날로 끌고 간다.
우리 집은 남원경찰서
운봉 지서 앞 신작로 옆에 있었다.
언젠가는 경찰지서에서
쏘아대는 총탄이 방벽을
뚫고 지나간 적도 있다.
그때에 총알에 맞지 않은 것은
총알이 사람을 피해 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이념이
무엇이고 사상이 무었이기에
지리산 골짜기마다 무고한 젊은
생명들이 젊은 피를 흘리며 슬어 졌는가?
소설속에 펼처진 장면과 유사한
상황이 소년 시절의 그것과 신기하게 맞물린다.
면 소재지 경찰서 지서 앞에
자리한 우리집 앞 신작로 새벽길에
공비들의 출현을 고발하는 젊은이가
저벅저벅 뜀박질을 하며 숨 가쁜 외침이 들린다.
공안 1구 공비 출현이오”
어둠 속 신작로를 달리면서
지서 보루(堡壘)에서 자기에게는
발포를 하지 말라는 절규다.
공비출현을 고발하지 않으면
이튿날 경찰들에게 통비 분자
마을로 닥달을 당한다.
아버지와 함께 이부자리 안에서
들리는 새벽잠을 깨우는 고함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때가 초등학교 4학연 이었으니
삶과 죽음의 의미도 모를 때 었다.
지금은
자식들 한둘 기르기도 힘들다는데
그 난리 속에 우리의 부모님들은
3살 터울의 줄줄이 늘어선 아들
딸들을 어떻게 먹이고 입히고
거두었을까
새삼
존경심과 고마움이 사무친다.
좌파의 주장이나 정책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 역사적으로나
이론적으로 검증이 끝난 지 한참 지났다.
사회주의 탈을 쓰면
모든 것이 획일적으로 바뀐다,
북 구라파 몇 나라의 개신교
성직자들은국가에서 보수를 받는단다.
묘향산 보현사 주지스님은
하이카라 머리에 구두들 신고
나타나 평상복위에 가사 장삼을
걸치고 참배객을 맞는다.
모향산 보현사 석탑(필자의 북한 묘향산 보현사 방문)
필자의 북한 묘향산 보현사 방문
보현사를 지키는
두 스님의 신발이 대조적이다.
불전(佛錢)함에는 달러도
엔화도 한화도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철 지난 사상의 세례를
오래전에 받은 자들이 자유롭고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엉뚱한 방향으로
밀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한국에 사는 80세가
넘은 초등학교 동창이
지금도 카톡으로 현
정권을 헐뜯는 글을 보내온다.
태생적으로 반골체질은
고치기가 어려운가보다.
그의 카톡 닉네임은 좌빨이다
미주에서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 공립도서관에 가면
한국 도서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어를 읽을 줄 알면
골라서 읽을만한 책들이 많이 있다.
겨울눈이 포근히 내리는
따뜻한 안방에서 배곯아 죽고,
얼어 죽고, 총 맞아 죽은 고혼
(孤魂)들의 빨지산 투쟁사를
읽어 보는 것도 지루한 겨울을
지내는 한 방법이다.
뉴욕 일보 1월 18일자 에 기재된 윤봉춘님 수필
동영상 출처
한국 KBS 역사스페셜
KBS 역사스페셜 ? 빨치산토벌대장 차일혁의 기록
https://youtu.be/MP6Bf2DNKLw
Pantalla Base/Guggul/Argentina에서
자료 화면 캡처.